우리가 자주 쓰는 말 가운데 ‘촌스럽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세련된 맛이 없고 엉성하고 어색한 데가 있다’입니다. 

 그렇다면 촌스럽다는 말에 대비되는 말은 ‘세련되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세련되다’는 말은 ‘서투르거나 어색한 데가 없이 능숙하게 잘 다듬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세련되다는 말과 대비되는 촌스럽다는 말은 뭔가 구식이거나 조잡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상태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세련되다는 말과 대비되는 말로 촌스럽다는 말이 사용된 것일까요? 

 영국의 칼럼니스트인 다니엘 투더(Daniel Tudor)는 그의 책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에서 이렇게 분석합니다. 

 우리나라가 급속한 경제발전을 거치는 과정에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시골에 속한 것들은 서울이나 대도시의 새것들과 반대되는 뒤처지고 낡은 것, 갈아치워야 할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도시의 화려한 생활방식과 도시화는 시골에서는 따라갈 수 없는 과학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도시에는 시골에서 경험해 볼 수 없는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일본의 뇌과학자 모기 겐이치로의 말대로 인간은 네오필리아(neophilia)의 성향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새로움을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새것에 중독된 존재인 것처럼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건 옛시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신상열풍이 이는 것처럼, 새로운 무언가가 나오면 그것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치 새로운 것을 가지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갖지 않으면 못 견디어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의 최첨단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에 레트로(retro) 열풍이 일고 있습니다. 

 레트로란 복고주의를 지향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옛날 추억이나 과거의 전통을 그리워합니다. 

그래서 추억이 깃든 옛날의 장소를 찾아가거나 일부러 시골 냄새가 가득한 곳을 검색해 찾아가기도 합니다. 

어쩌면 첨단의 과학문명이나 초현대 문화가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결핍된 우리 인간의 결핍을 찾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대한 빌딩 숲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자연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은 열망 때문일 것입니다. 전주의 한옥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도 그런 마음 때문입니다. 

 시골스러움, 예스러움에서만 맛볼 수 있는 희열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유럽 여행에서 주로 찾는 곳이 몇백 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고풍스러움이 남아 있는 곳임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예스러움을 찾아가는 것이 어쩌면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지금까지 발전해 온 과학은 대부분 종교와 대척점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학의 발달은 우리의 삶에 여유와 편리와 풍요를 주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이전 어느 시대도 경험하지 못한 최고의 물질문명의 풍요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풍요로움으로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갈급함이 있습니다. 편리하게 살고 싶은 마음 못지않게 편리함에서 느끼지 못하는 결핍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경에서 광야를 자주 언급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것입니다. 광야는 화려한 도시에 비하면 촌스럽기 그지없는 곳입니다. 광야는 물질문명이 가져다준 편리함이나 풍요를 전혀 느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신앙에 있어서는 광야만큼 중요한 곳이 없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풍요를 경험하기 전에 광야에서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을 했던 이유도,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금식한 이유도,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난 이후 사도로서의 삶을 살기 이전에 아라비아로 갔던 이유도, 수도사들이 화려한 성당을 떠나 사막으로 갔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곳에서만 채워지는 하늘의 기쁨과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만 가능한 신앙훈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 문명 속에서 비종교화되어 가는 시대일지라도 희망이 있는 것은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레트로에 대한 갈망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학과 문명과 풍요가 채워주지 않는 영적 갈급함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촌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종교는 세련되지 않아야 합니다. 촌스러움을 간직해야 합니다. 뭔가 불편하고, 뭔가 부족하고, 뭔가 어색함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 세련되고 풍요로움을 가진 요즘의 교회들이 안타까운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세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다가 신앙에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촌스러움! 어쩌면 거기에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던 라오디게아 교회가 주님께로부터 책망받은 것은 세련됨은 가졌으나 촌스러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촌스러움에 담아야 합니다. 촌스러움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촌스러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촌스러움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지라도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서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촌스러움에서 교회의 희망을 봅니다. 촌스러움에서 우리 신앙의 회복을 기대합니다. 촌스러움에 대한 갈망이 있는 한 신앙은 그 욕구에 응답할 것입니다. 

 가장 현대화된 오늘 우리 시대에 우리 신앙인들이 추구해야 할 경건의 모습은 촌스러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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