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자랑아닌 선조 신앙을 본받는 이들 기록”

순교자 박병근 전도사의 사역 기록과 그 가족들의 신앙의 이야기를 담은 ‘밀알의 흔적’이 크리스챤서적에서 출간 됐다.

이 책에는 박병근 전도사의 가계에 흐르는 기독교 신앙과 함께 순교자 후손들이 겪은 고난이 기록돼 있다.

박 전도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강진과 영암경찰서에서 1년 넘게 옥고를 치르고 출소 후 자택에서 교회를 개척 하는 등 일경의 감시에도 꿋꿋이 목회를 지속했다.

해방 후엔 함평 나산교회 등 좌익 세력이 강한 지역의 교회에 부임해 성도와 교회를 지키다가 전쟁 중 공산군에게 끌려가 순교당했다.

차남 박금규는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 하기 위해 함평에 왔다가 ‘미션스쿨 (숭일중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공산당원에게 살해당했다. 사위 김인봉 전도사도 전쟁 중 공산당원에게 붙잡혀 희생됐다.

잇따른 비보 가운데서도 유족은 박 전도사 순교 당시 입은 옷에서 총탄이 뚫고 지나간 부분을 잘라 보관하기도 했다. 그의 ‘일사각오 신앙’을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서였다.

이 영향으로 박 전도사의 장남 박환규 목사를 시작으로 대를 이어 목회자 를 배출하는 신앙의 명문가문이 됐다.

책을 펴낸 박중기 장로(전주온누리교회)는 “우리 집 가훈은 ‘죽도록 충성 하라’다. 아버지께선 명절 때마다 총 구멍이 난 할아버지의 옷 조각을 보여 주곤 하셨다”라며 “이 책이 한 가족의 자랑이 아닌, 선조의 신앙을 본받는 이들의 기록으로 남겨지길 바란다”라고 했다.

박병근 전도사 이야기를 손자 박중기 장로를 만나 들어보았다.

-. 박병근 전도사님이 어떻게 순교하셨나?

“박정근 전도사님은 저의 할아버지이시다. 1940년 9월 영암읍교회 시무 중 교회당 파괴와 창씨개명, 신사참배를 반대하시다가 경찰에 체포돼 그들의 회유를 거절하자, 광주형무소로 이관 돼 1943년 11월 광주지방법원 재판 결과 1년 6개월의 징역형 등 모두 3년 2 개월 간의 옥고를 치른 후 출소하셨다.

1950년 8월 17일 함평 나산교회 시무 중 감옥에 갇혀 있다가 영문도 모른 채 우익 인사 46명과 저희 할아버지는 함평 향교 뒷산으로 끌려가 공산당원들의 무차별적인 총살에 의해 순교의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셨다.

할아버지의 시신은 두 손은 앞으로 묶이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발견되었고, 뒤에서 등에 대고 쏜 총탄이 배를 관통했다. 하나님 앞에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옥고를 치루셨던 할아버지는 끝내 일본 경찰이 아닌 좌익 사상에 물들은 동포가 쏜 총탄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셨다.

-. 박 전도사님이 순교에 대해 담대 하셨다는 것이 도전이 된다.

“공산당원들의 체포의 위험이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알면서도 끝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할아버지는 지키셨다. 그러기에 죽는 순간까지도 기도하는 자 세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순교의 피를 땅에 쏟으셨다. 일제 때 신사참배 거부로 광주형무소에 수감되시고, 손양원 목사님 등과 함께 묶여서 재판정에 오 가곤하셨다. 할아버지는 그때 순교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신 것 같다.

신사참배만 아니라 창씨개명도 거절하고 성도들에게 해방의 소망과 주의 강림을 선포하면서 소망을 심어 주었다. 반공운동에도 앞장서서 청년들을 지도하셨다.”

-. 할머니도 전도부인으로 사역하셨다고 했다.

“전도부인은 선교사들을 도와 복음을 전하고 여성들에게 성경과 찬송을 파는 권서인(勸書人) 역할을 겸했다. 한글을 가르쳐 여성 문맹 퇴치 운동에 도 앞장섰다. 전도부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초기 권서인의 역할에서 벗어나 여러 지방을 순회하면서 성경공부반을 지도하고, 교회를 설립하기도 했으 며, 미자립교회의 성장을 돕기도 했다.

저희 할머니(좌초선)도 서서평 선교사 님을 따라 광주에서 교육을 받고 전 도부인으로 파송돼 지역을 순회하며 전도 사역을 감당하셨다. 할머니의 성 이 특이해 저희 아버지께서 이웃 면의 반남 대안교회 시무하실 때 공산교회 에서 사역하셨던 것을 알게 됐다.”

-. 일본인 기독교인 도움도 있었다는 데.

“저희 할머니는 고향인 제주를 오가며, 보따리 장사를 하시다가 영암군 군서면 해창리 신흥 부락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당시 일제가 식량 수탈을 위해 해창 부락 일대 바다를 막아 논을 만드는 간척지 개발 사업이 한창이 었다.

일본인 현장소장의 부인이 기독교 신자였는데 영암읍교회 담임이셨던 할아버지가 감옥에 잡혀가고 저희 할머니가 어린 4남매를 데리고 교회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에게 이야기해, 바다를 막아 새로 조성된 논 을 무상으로 임대하여 주기도 했다.”

-. 출소 후의 할아버지의 사역은?

“1943년 11월 19일, 3년 2개월 만에 할아버지께서 출소하자 다시 신흥 부락 신흥교회에서 다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셨다.

일본 경찰의 끊임없는 감시의 눈총 속에서도 할아버지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목회에 정진하셨다.

영암군 내 장암교회와 구림교회도 겸임 해 시무하던 중 1945년 8.15해방을 맞 았다.

할아버지는 1947년에 광주 광산교회에서, 1948년에는 무안군으로 옮겨 현경면 현경교회에서 시무를 하셨다.”

-. 그당시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광주형무소 구속 수감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게되 자 취업 일선으로 나서며 3년 간을 가사를 도우셨다. 당시 아버지의 나이는 15세였는데 장남이셨던 아버지는 이때부터 신문 배달, 사진관, 양복점 등 에서 일하며 가정을 돕기 시작했다.

그 당시 대중교통 수단이었던 목탄차 버스의 조수로 근무할 때 차 사이에 끼어 죽을 고비를 맞기도 하셨다. 할아버지께서 출소하시자, 아버지는 가사 를 도우면서 틈틈이 우편을 이용한 통신 과정으로 중학 과정을 공부하셨다.

할아버지는 1946년에 아버지를 광주 고등성경학교에 보내셨다. 당시 현경 교회에서 시무 중이셨던 할아버지는 1948년 12월 27일 성경학교 졸업을 앞 두고, 아버지를 이웃 교회인 무안면 매곡교회 전도부인 박소님의 유복자 딸 인 저희 어머니(문례순)와 결혼을 시키셨다. 매곡교회에서 전정현 목사님의 주례로 두 분이 결혼식을 하셨다. 아버지는 이후, 광주고등성경학교를 졸업하시고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셨다.”

/임채영 기자